학교에 재학 중, 이런 과제가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빵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빵은?"
나는 그 과제에 답으로 "식빵"을 적었고, 부가설명을 더했다. "각 나라별로 익숙한 빵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서양의 식사빵과는 다르게 동양에는 식사빵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알고 있으며, 내가 자라온 환경과 기억을 되짚어 봤을 때 가장 쉽게 접했던 빵이 바로 식빵이었다."
식빵은 아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프랑스에는 '팽 드 미(Pain de mie)'라는 빵이 있다. 이 빵은 '속살(크럼)이 많은 빵'이라는 의미로, 부드럽고 촉촉하며 크러스트가 얇아 샌드위치나 토스트에 적합하게 설계된 식사빵이다. Pain de mie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대중화되었으며, 바게트와 같은 하드 브레드에 비해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하는 일부 계층의 요구에 따라 발전했다. 이 빵은 공장에서 기계로 만들기에도 비교적 적합했고, 포장 판매가 용이하여 프랑스 내에서 상업적인 식사빵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식빵의 레시피는 영국에서 유래하고, 상용화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당시에 미국은 1920~1930년대,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된 베이커리 시스템이 도입되고, 냉장고의 보급으로 인해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식빵은 사워도우와 비교했을 때 냉장보관이 용이하고, 속의 촉촉한 식감을 잘 유지했으며, 사워도우는 그 시점의 미국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게다가 사워도우는 자연 발효로 인해 시간과 온도 조절이 까다롭고,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기계화된 생산 방식에 부적합했다. 반면 식빵은 이스트를 활용해 짧은 시간 안에 발효가 가능하고, 레시피와 공정이 단순하여 대량생산에 적합했다.
미국의 발명가 오토 로웨더(Otto Rohwedder)가 식빵 슬라이서를 발명하면서, 일정한 두께로 잘린 식빵은 소비자들에게 더욱 실용적이고 편리한 제품으로 각광받게 되었고, 이는 식빵 대중화의 시작이 된 걸로 보인다.
이와 비슷한 시기 혹은 그보다 앞서, 일본에도 식빵이 유입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시기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일본에서는 이를 '쇼쿠판'이라 불렀다. 이후 20세기 초반, 일본의 도시 산업화와 함께 빠르고 간편한 식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식사빵으로써의 쇼쿠판은 대중화되고 지금까지 사랑받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식빵은 일제강점기를 통해 처음 들어왔으며, 초기에는 상류층이나 외국인을 위한 고급 식재료로 소비되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보편화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쇼쿠판이 '식사용 빵'이라는 개념으로 소개되었기에, '식사빵'이라는 말이 줄어들어 '식빵'이라는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식사빵 = 식빵.
식사로 밥만 먹던 내가 호주에 와서 살아보니, 여기서는 빵을 식사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
그래서 '한국의 빵'이라는 걸 떠올려보았을 때, 그나마 식사용 빵으로 자주 사용되며 필자에게도 익숙한 '식빵'이 떠올랐던 것이 아닐까, 지금에 와서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각 나라에서는 그 문화와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른 형태의 식사빵이 발달했고, '빵'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호주에서는 식빵이 쇼쿠판으로 이름 지어져서 팔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중에는 식빵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에서 팔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
'Orig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위스 롤케이크는 스위스에서 시작된게 아닌가 ? (1) | 2024.12.29 |
---|---|
판나코타/Panna cotta - 이탈리아/Italia (0) | 2024.12.25 |
파네토네/Panettone - 이탈리아/Italia (1) | 2024.12.13 |
슈톨렌/Stollen - 독일/Germany (0) | 2024.12.12 |
사탕의 역사 - 설탕의 온도에 따른 크랙화 (2) | 2024.12.10 |